청룡동의 유래
청룡동의 유래
청룡동은 1740년(영조 16년) 편찬된 《동래부지》에 그 지명이 나타나지 않지만, 1904년 탁지부에서 편찬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는 청룡동이란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33호의 호수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37년 편찬된《동래군지》에도 동래군 북면 청룡리란 명칭이 보인다. 이로 볼때 청룡이란 지명의 유래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청룡(靑龍)은 불교에서 ‘이십팔수’ 가운데 동방(東方)에 있는 일곱 성수를 총칭하기도 하며 사신(四神)의 하나로 동쪽 하늘을 맡은 신을 뜻하기도 한다. 청룡동은 범어사의 동편마을이란 뜻에서 지어진 동명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동네의 고로(古老)들은 계명봉이 계룡(鷄龍)의 형상으로 산의 중턱에는 계명암이 있고, 서단(西端)을 마주 대하여 미륵암이 있고, 동단(東端)에는 용의 머리가 있다하여 청룡동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고로들은 미륵암을 미리암이라 부르며 현재 항측도(航測圖) 상에도 미리암으로 표기되어 있다. 미리는 우리말로 용을 뜻하며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한다.
청룡동의 자연마을은 청룡ㆍ용성ㆍ신리ㆍ상마ㆍ하마의 5개로, 이중 청룡마을 외에도 용성마을도 용과 관계 깊다. 신리마을은 1940년대 북면사무소가 기찰(부곡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새로이 생긴 마을이란 뜻이다. 상마ㆍ하마는 청룡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 삼을 많이 심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원래 마을은 범어사의 창건이래의 잡역에 종사한 사람과 목수의 가족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대중음식점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청룡동은 유서깊은 범어사(대웅전, 삼층석탑, 일주문, 석등, 당간지주)와 금정산성 북문등이 소재한 곳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산시민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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