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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의 유래

선동의 유래

선동은 조선시대로부터 선동(仙洞)이라 불러졌다. 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에도 북면 선동이라 하여 동래부에서 15리 떨어져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제 때 와서 오히려 선리(仙里)라고 불리웠으며 1963년 부산직할시의 승격 때 부산시로 편입되어 북면출장소의 관할아래 있다가 1966년 다시 선리사무소를 선동사무소로 고쳐져 오늘에 이르렀다. 1975년 북면출장소의 폐지로 구직할 동으로 되었으며 1988년 금정구의 분구로 이의 관할 아래에 있다.

선동은 두구동의 임석(林石)마을과 같이 선돌(立石)이 있어 이를 표지물로 동리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설뫼’를 입산(立山)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자의 뜻을 취한 것이고, 선돌을 선동이라 한 것은 한자의 음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선동은 오륜대와 인접하여 신선이 노닐었다는데서 신선이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이어졌다고 하나 별 설득력이 없다.

선동은 하정ㆍ상현ㆍ하현ㆍ신현ㆍ신천등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었는데 이중 하현마을은 1942년 회동수원지의 건설로 없어져 4개의 자연마을만 남아있다. 1904년 간행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의하면 각리동에는 선리 24호, 현리 13호, 하정리가 17호, 신천리 20호의 호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개편 때 이 4개리를 병합하여 선리라 하여 동래군 북면에 소속 되었다. 이중 하정리는 조선시대 소산리(蘇山里)라 하였고, 여기에는 역원이 있었다. 당시 동래부 관내에는 소산역(하정)과 휴산역(休山驛, 연산동과 수영 사이)의 2개 역이 있었다.

선동은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그린벨트지역이 많아 현재 개발이 늦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지역발전도 미약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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