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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동의 유래

노포동의 유래

노포동은 1740년 편찬한《동래부지》의 기록에 의하면, 북면 작장리(鵲掌里)와 소산리(蘇山里)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37년에 편찬된 《동래군지》에는 작장리와 소산리의 이름이 보이지 않으며 대신 노포리로 등장하고 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다시 동래부에 속하였고, 1914년 일제의 부ㆍ군 통폐합에 따라 동래군 북면 노포리로 되었으며, 1963년 부산시로 편입되었다가 1966년 리제(里制) 폐지에 따라 노포동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노포동은 노포ㆍ작장ㆍ대룡ㆍ녹동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작장마을이 대표 마을이었으나 울산지역으로 도로가 열리면서 노포마을이 중심마을로 대두되었다. 지금은 울산과 양산방면으로 가는 도로와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지하철 시발지인 차랑 기지창이 위치하고 있어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서편에는 완만한 개발제한지역이고, 동편은 약간의 평지가 있어 쌀 중심의 농업과 과수원이 있고 양어장이 있다.

노포란 농사를 잘짓는 농부, 또 농사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늙은 농부를 뜻하는데, 노포동이란 농사가 잘 되는 마을, 다른 곳에 비해 농토가 풍부한 마을이라는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1984년에 발굴된 노포동고분군(古墳群)은 부산지방의 고분군 중 가장 앞선 시기의 유적으로 노포동은 어떤 지역보다 앞서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흑자는 노포동을 말 그대로 오래된 채밭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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