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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의 유래

서동의 유래

조선후기 1832년에 간행된 《동래부읍지》에 동래부는 명장리(鳴藏里)·서리(書里) 금사리(錦絲里)·반여리(盤如里)·회동리(回東里)등을 동상면(東上面)이라 하였고, 우리(佑里)·중리(中里)·좌리(佐里)·남수리(南壽里) 등은 동하면(東下面)이라 하였다.

1942년 10월 1일 동래군이 부산부로 편입됨에 따라 동상면의 중심마을인 서리 금사리 회동리를 합하여 서동(書洞)이라 호칭하게 되었다. 이후 동세가 확장됨에 따라 1959년 서동을 금사동과 회동동을 합하여 동상동(東上洞)으로 개칭(改稱)하였으며, 1968년 2월 시내 영주동, 충무동 등지의 고지대 철거민의 정책이주지로 선정되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으며, 1975년 동상동은 동상1, 2, 3동으로 분동되고 1982년 동상동명이 영도 동삼동과 발음이 비슷하여 혼돈이 많아 동명을 옛 서동(書洞)으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서리(書里)로 불리던 『서동(書洞)』은 서쪽 있는 마실이란 뜻의 섯골(西谷)마을과 안쪽에 있는 마실이란 뜻의 안골(內谷)마을의 두 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내곡은 안마실이란 뜻으로 동명으로 부적격하여 섯골을 한자로 서곡(書谷)으로 표기하므로 『서동(書洞)』으로 발전한 것이다.

섯골(書谷)

현 금정여고에서부터 서곡초등학교까지 서동우회도로 아랫지역 일대에 있던 자연마을로서 서동의 본동이며, 중심마을이다. 섯골을 큰마실(마을), 안골을 작은 마실(마을)이라 하였다. 현재에도 서곡초등학교, 서곡컴퓨터학원, 서곡슈퍼 등 섯골을 뜻하는 서곡의 이름을 붙인 곳들이 많이 남아 있다.

안골(內谷)

현 금사중학교에서부터 금정전자공고 아랫지역 일대에 있던 자연마을이다. 안마실(안마을), 내곡(內谷)이라고도 부른다. 안족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안골, 안마실이라 부른다. 1945년 광복 당시 가구수는 약 30호 정도이며, 농업을 주업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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