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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동의 유래

구서동의 유래

구서동은 조선시대에는 구세리라 불리었으며, 1740년 간행한 《동래부지》에 의하면, ‘구세리(仇世里)는 관문에서 12리에 있다’고 한다. 그후 대한제국 시대에 구서리와 두실리의 2개리로 편성되었다. 이때 구서리는 25호, 두실리는 23호의 호수가 있었다고 광무 8년 (1904)에 편찬된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에 기록되어 있다. 1937년 편찬된 《동래군지》에도 구서리(九瑞里)란 명칭으로 기록되고 있다. 1914년 구서, 두실, 금단의 3개 자연마을 합하여 구서리라 칭하였고, 동래군 북면에 속하게 하였다. 1963년 1월 1일 부산시에 편입되었으며, 1985년 12월 1일 구서마을과 금단마을은 구서 1동으로, 두실 마을은 구서 2동으로 분동되었다.

구서동의 유래는 이 지방의 토박이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구세(仇世)는 구세동거(仇世同居)에서 따온 말로 중국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는 9대가 한 집안에서 살았다는 고사에서 집안이 화목한 것을 이르는데, 이곳이 바로 그러한 고장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설명한다. 여기에는《동래부지》의 효자효녀(孝子孝女)조에 나오는 구주성(俱周星)의 성씨를 따서 구세로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는 실상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으며, 구주성 또한 구서동의 인물이 아니고 사상에 효자비가 있어 사실이 아니다.

이 동에는 동래 정씨, 죽산(竹山)박씨의 집성촌으로 오랫동안 자연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왔으나 지금은 도시화로 집성촌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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